August 24 2015

[테마진단]샌더스와 트럼프 (중앙일보)

2016년 대선은 뻔한 전개가 예상됐었다. 클린턴과 부시 가문의 대결이 일반의 관측이었다. 민주당은 힐러리 클린턴의 아성이 공고했다. 공화당은 젭 부시가 유력 후보였다. 이렇게 심심할 줄 알았던 대선 레이스에 작은 파문이 일어났다. 후보들이 본격 등장하자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졌다.

민주당에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주목을 끈다. 공화당에선 도널드 트럼프가 연일 화제의 중심이다. 샌더스는 자칭 사회주의자다. 그는 대안의 사회체계를 지향한다. 트럼프는 부동산 재벌이다. 그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성공 아이콘이다. 양 극단의 성향인 두 후보가 쌍끌이로 '대선극장'에 관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샌더스는 "미국은 정치혁명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정강정책은 그의 진보성을 대변한다. 세제 개혁과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재분배 인종차별 철폐 국영 건강보험 도입 대형 금융기관 해체 선거 공영제가 주요 공약이다. 그는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 확대도 줄곧 반대했다. 아울러 공립대학 무상교육 성적 소수자 권리 향상도 주장한다.

양당 독점 구도의 정치지형에서 샌더스는 특별한 위치에 자리한다. 그는 시장 하원의원과 상원의원으로 이어진 정치이력 전부를 무소속으로 일관했다. 그 점이 본인의 신념을 거침없이 표현할 수 있는 비결이다. 반면에 정치력으로 정책 성과를 일구기 힘든 '외로운 투사'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체계화된 공약이 없다. "미국에 다시 영광을" "진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선언이 전부다. 그럴듯하지만 구체성이 결여된 허망한 구호다. 그의 인기 비결은 따로 있다. 화끈한 입담이다. 실제로는 막말 퍼레이드다. 트럼프는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만끽 중이다.

트럼프도 공화당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당내정치에 귀속된 직업 정치인이 아니다. 과거의 로스 페로처럼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독립 선거 캠페인을 꾸릴 수 있다. 지금처럼 안하무인이기 좋은 조건이다.

샌더스와 트럼프를 비교하면 매우 다른 후보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주목 받는 현상엔 공통점이 있다. 양자를 향한 열광엔 공히 오늘의 현실이 응집되어 있다. 1%를 위한 나라인 미국의 대중들은 괴롭다. 힘든 현실과 불안한 미래에 절망한다. 이런 그들에겐 복지확대와 부의 재분배를 선명하게 외치는 샌더스가 반갑다.

트럼프는 멕시칸 이민자들을 성폭행범이자 범죄자로 낙인찍었다. 그러자 인기가 더 치솟았다. 심지어는 속지주의를 규정한 수정헌법 14조의 개악도 공언한다. 그는 미국 정치권 전체를 무능한 집단으로 묘사한다. 대중들은 그의 발언에 쾌감을 느낀다. 미국은 선진 민주국가라 하기엔 투표율이 상당히 낮다. 이는 현 정치권에 대한 대중들의 불신을 웅변한다. 샌더스의 진보공약을 지지하고 트럼프의 막나가는 발언에도 박수를 치는 대중이 공존하는게 미국의 현모습이다.

그렇다면 샌더스와 트럼프는 과연 승리할 것인가. 샌더스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없다. 예비선거 승리도 기대난망이다. 샌더스 현상은 진보성향 시민들의 자기위안성 열광이다. 용두사미였던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과 비슷한 양태다. 트럼프 현상은 불안한 사회에서 자주 출몰하는 극우 목소리의 준동이다.

결국 대선이 본격화되면 시민들은 기존 선거양상의 되풀이를 목격한다. 양당의 유력 후보들은 미국의 근원적 문제엔 눈감는다. 오늘의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질 않는다.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20% 이상을 가져가는 현실 인구의 15%가 연방 빈곤선 이하로 생존의 기로에 놓인 현실 인종간 극심한 격차 유색인종의 인권침해 현실은 다루어지지 않는다. 후보들은 그저 감세와 중산층 부양 그리고 표현만 유려하고 내용은 부실한 닳고닳은 백화점식 공약으로 포장하고 이미지 대결에만 치중한다. 정책대결의 외양을 띤 말발 경쟁인 정치쇼가 본질이다.

미국 선거는 큰 변별점이 없는 두 정당의 끝없는 대결이다. 여기서 진정한 의미의 혁신을 제시하는 후보가 낄 자리는 없다. 샌더스의 존재는 대선 레이스의 흥미요소로만 기능한다. 그가 민주당 후보로 나선 이유도 고육지책이다. 공화당 후보에게 어부지리를 선사할 '스포일러'가 될 수 없어서다. 대안 정당이나 정치그룹의 유의미한 세력화가 봉쇄된 미국정치의 현주소다. 그래서 미국의 정치와 선거는 다양한 정책요구를 수용하지 못한다. 정치적 상상력이 부족하다.

차 주 범
민권센터 교육부장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36216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