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04 2017

이민자 권익 챙기는 일…누군가는 해야할 일이죠 (한국일보)

▶ 차 한잔의 초대/민권센터 문유성 회장·이사장

이민생활 27년을 민권센터와 함께
불체청소년·노인들에 삶의 버팀목 돼주고파
소수민족·약자 위한 일들에 지지·참여 부탁

한인을 비롯 아시안 커뮤니티의 권익 옹호와 봉사, 정치적 강화에 앞장서고 있는 민권센터는 한인사회 주요버팀목 중 하나이다. 만일 민권센터가 없었더라면 누가 신원미비자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눈물을 닦아주었을 것인가, 민권센터 문유성 회장을 만나본다.

●이민자 권리 찾아주기
27년 전 민권센터에 몸담아 설립 30주년인 2014년부터 회장 겸 이사장을 맡아 소리 없이 봉사하고 있는 민권센터 문유성, 그의 첫마디다.

“민권센터는 꾸준히 성장해오고 있다. 3년전 회장직을 맡아 어깨가 더 무겁다. 트럼프행정부의 반이민적이고 차별적인 이민정책에 계속 대응하고 있지만 너무 공격적으로 나오니까 어떻게 풀어야 할 지 숙제다. 

서류미비자가 음주운전 단속에 걸려서 추방되고 술집에서 옆에서 싸움 하는 것을 구경하던 한인이 출동한 경찰에 체포되어 서류미비자임이 밝혀지자 추방 되는 가하면 서브웨이역 계단에 앉아있다가도 그런 경우를 당하고, 각종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

최근 한인사회의 소외된 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들이다. 민권센터는 이렇게 소외된 계층 대신 목소리를 내주는 곳이다. 새로운 이민정책 교육 및 홍보, 법룰 서비스(상담 추방)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권익신장, 정치력 신장을 위한 활동, 청소년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지난 3월부터 민권센터 소속 이민변호사 3명과 실무진들은 2주에 한번씩 한인들을 대상으로 이민법설명회를 열고 있다. 바로 이민자 권리 커뮤니티 워크샵 시리즈이다. 
“센서스 추산으로 미전역에 한인 120만명, 그중 15%가 서류미비자, 약 20만명이 서류미비자에 해당된다. 1년에 신분미비 문제 등을 지닌 6,000여명의 이민자들이 민권센터를 통해 해결책을 찾고있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 
그렇다면 민권센터는 언제부터 우리 옆에서 이민의 삶을 지켜주고 있는 것일까? 1984년 합수 윤한봉 선생이 뉴욕청년교육봉사원을 설립(이후 청년학교로 개칭)했고 10~15년 전부터 연방정부의 반이민정책에 맞서 서류미비 청소년과 저소득층 노년층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이민자와 주거관리 현안 해결에 노력해왔다. 2009년 설립 25주년을 맞아 민권센터로 개칭했다. 

민권센터는 지난 4월10일 제임스 홍, 존 박을 공동 디렉터로 선정했는데 제임스 홍은 시민참여와 이민자 권익옹호, 유스 프로그램 등을, 존 박은 사회봉사와 소셜 서비스, 재정 및 행정을 담당한다. 현재 상근직원이 20여명인데 변호사가 5명, 그중 3명은 이보희, 수잔 리, 수와 김 이민법이고 주택법 우수현, 노동법 제인 김 변호사가 일하고 있다. 

그동안 김수곤 정신의학 박사가 명예 이사장에 이어 현재 이사로 있으면서 큰 공헌을 했고 현재 13명의 이사들은 변호사, 보석의류 디자이너, 건설업, 자영업자이다. 법대생이나 졸업자 자원봉사자가 1년에 700여명이다.

민권센터가 이민자를 위해 하는 일은 무수히 많지만 특정정치인을 상대로 엽서보내기, 전화걸기 캠페인, 풀뿌리 이민개혁 활동은 연방의회 휴회기간인 8월에도 쉬지 않는다. 서류미비 청소년추방유예 행정 DACA 신청 서비스에 한인청소년 40%가 민권센터를 통해 했을 정도로 청소년들이 이곳을 자기집처럼 편하게 이용하고 있다. 

지역사회 주요현안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는데 플러싱 서부조닝변경 모의공청회, 무료세금보고 대행 등의 민원사항도 해결해준다. 아시아 커뮤니티의 정치력 신장활동을 위해 민권센터가 주도하여 아시안정치력신장단체연합(APA Voice)과 뉴욕한인봉사단체협의회(KAHSPA)와 활동을 함께 하고 흑인 커뮤니티와 연계하고 있다.

“미국은 앞으로 4년간 쉽게 안 바뀔 것이다. 내년에 연방하원선거인 중간선거를 치른다. 앞으로 중장기적 대응을 세워야 한다. 뉴욕시장 후보 토론회, 한인밀집지역 시의원 토론회 등등 풀뿌리 지도자 양성과 여러 커뮤니티와의 연대를 통한 사회변화를 이루겠다. 

민권센터는 이민 1세대와 영어권인 2세대와 공동구성되어 이사회 회의도 이중언어로 진행하고 있다. 한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100명이 모인다. 청소년, 청년, 중년, 시니어 등 다양한 연령이 이민의 삶을 개척하는데 도움을 주고받는다.”

“서류미비 청소년들은 그룹으로 묶어서 필요한 서비스를 하고 있다. 주말에는 무료시민권신청대행 클리닉을 연다. 여름에는 청소년프로그램이 진행된다. ” 

●누군가는 해야 좋은 일 
문유성은 1968년 부산 출생으로 87년 한국 민주화운동이 불꽃처럼 일어나던 해에 대학에서 지리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회적 분위기가 젊은 혈기의 그를 학생운동에 저절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90년 LA로 유학을 왔다가 청년학교 자매단체인 로스앤젤레스 민족학교 간사로 있으면서 본격적으로 이민자의 권익 옹호를 위해 힘쓰게 되었다. 1993년 필라델피아 청년마당집 사무국장으로 5년간 일하다가 1998년 뉴욕으로 와서 청년학교 사무국장으로, 재미한국청년연합 조직부장으로 일했다. 그가 10년간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단체의 질적 양적 성장을 크게 이루었다. 

“누군가는 해야 좋은 일이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었고 꼭 하고 싶었고 오랫동안 일해 오면서 정말 커뮤니티에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그의 이민생활 27년이 민권센터와 함께였다. 10년 정도는 사무총장 직급으로 보수를 받았으나 17년은 거의 무보수 봉사직이었고 회장직은 100% 자원봉사다. 

문유성은 매일 출근한다. 일주일에 두 번은 프론트 데스크에 앉아 민권센터로 걸려오는 전화를 직접 받고 방문자와 상담하여 해결방법을 알려준다. 커뮤니티와 직접 소통 하는 것이다. “다양한 내용의 전화가 오는데 신분미비자인 게 탄로 날 까봐 몸이 아파도 병원에 못간다, 렌트가 밀려서 쫓겨날 처지이다 등등의 전화가 수시로 온다. ”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생활을 할까. 
“오후 4시면 퇴근하여 가족이 하는 홀세일 비즈니스를 한다. 그동안 저녁이면 캐셔 일, 건축 노가다 일 등을 했다.”뭐니뭐니해도 가장 든든한 내조자는 아내 김희숙이다. 회계사로 일하면서 민권센터 이사로써 많은 일을 함께 해오는데 그는 “ 아내에게 너무 너무 고맙다 ”고 말한다. 

아무리 다른 이를 위한 봉사직이라도 해도 서로간 의견이 충돌되는 갈등과 분열이 없을 수 없다. 같은 목적으로 출발했지만 20년지기인 LA민족학교와 분열 끝에 갈라졌을 때는 정말 힘들었고 울기도 했다. 다행히 3년전부터는 사안에 따라 행동을 같이 하고 있다. 

●한인사회가 할 일
민권센터의 1년예산 160만달러는 정부기금 15%, 사설 파운데이션 70%, 나머지는 연례만찬과 개인 후원금으로 충당된다. 한인기업으로 H마트, 외국계 은행으로 체이스 뱅크 등이 후원하고 있다. 민권센터의 33주년 창립기념일은 오는 10월21일이다.

“이 때가 되면 본인이 직접 거는 전화가 100통이다. 기금모금 만찬 참여를 부탁하는데 이민자 밀집지역인 플러싱 대동연회장에서 열린다. 이날, 드리머들, 시니어들, 우리 프로그램과 연관 있는 100명의 한인을 무료초청 한다. ” 

“미국에서 과연 소수민족 정책이 바뀔 수 있는가 회의하지 말고 바뀔 수 있다, 될 수 있다고 믿자. 우리 모두 소명을 갖고 일하고 있으니 한인들도 반이민법 저지 서명운동 참여를 부탁드린다. 앞으로도 민권센터가 하는 소수민족, 약자를 위한 일련의 일들에 변함없는 관심 지지 후원 참여를 부탁드린다.“ 

며 한인사회 발전과 미래를 위한 활동에 다같이 동참할 것을 권하는 그다. 겸손하고 바른 청년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는 문유성, 막 50대에 접어든 그의 더욱 힘찬 행보가 기대된다. 

<민병임 논설위원>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170504/1054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