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권센터 30년 (1984-2014)
– 이 땅에 살기 위하여 -

민권센터(MinKwon Center For Community Action)는 1984년에 설립된 커뮤니티 민권단체입니다. 설립 당시 이름은 ‘뉴욕청년봉사교육원’이었으며 그 후 청년학교로 변경했다가 2009년 설립 25주년을 맞아 현재의 단체명인 민권센터로 개칭했습니다. 민권센터는 커뮤니티 권익증진과 정치력 신장을 위해 활동하는 민권단체이며 그 밖에 교육, 사회봉사 활동, 청소년 프로젝트, 문화 활동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1. 설립 배경

미국사회의 커다란 변화를 불러 온 민권운동의 여파로 1965년에 가족초청 허용을 골자로 한 이민법이 개정된 후 한인 커뮤니티는 이전 대비 급속한 질적,양적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반면에 하나의 커뮤니티로서 구심력은 매우 약한 수준이었으며 대부분이 1세로 구성된 한인들은 언어장벽, 인종차별 등의 어려움으로 힘든 이민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민권센터 창립자들은 커뮤니티 권익증진과 봉사활동을 하는  한인과 이민자 커뮤니티를 위한 열린 마당으로서 민권센터를 창립했습니다.     

2. 활동 약사

1) 1980년대: 이 땅에 뿌리내리기

민권센터 초창기에는 동포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뿌리교육과 장년, 성인들을 위한 사회봉사 활동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민족교육의 일환으로 어린이들을 돌보아주는 방과후 학교, 여름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동포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도서실을 만들어 인문, 사회 등 각 분야에 걸쳐 총 3000여권의 책을 구비해 무료 대출해 주었습니다. 매달 교양강좌를 개최해 미국사회의 시사문제부터 실생활과 관련된 주제를 가지고 동포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했습니다.

사회봉사 활동도 날로 업무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특히 영어가 불편해 힘든 이민생활을 영위하던 노년층에겐 민권센터의 사회봉사 업무가 날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 민권센터 상근자들은 상담부터 문제 해결까지 전 과정을 발로 뛰어 정부 사회복지 혜택 신청, 노인아파트 입주, 이민국 업무, 병원, 은행 관련 일까지 노인생활과 연관된 모든 분야에 걸쳐 도움을 제공했습니다.

이런 활동들을 통해 민권센터는 동포사회의 중요한 단체로 인식되었으며, 한편 도움을 받은 동포들이 금전과 물품을 후원하면서 단체가 점차 커뮤니티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시안아메리칸법률교육재단과 공동으로 시작한 무료 법률상담은 법적 조력을 제대로 받지 못하던 저소득층 동포들의 중요한 권익신장 창구가 되었습니다. 이민법, 반아시안 폭력, 인종차별 문제. 세입자 권리 등에 걸쳐 다양한 분야의 상담을 했습니다.

창립 이듬해인 1985년에는 ‘뉴욕한인문화패 비나리’를 창단하면서 문화 활동의 족적을 내딛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동포사회에 건강한 민족문화 보급활동이 미약한 수준이었으며 비나리는 민족문화를 동포사회에 심고 타민족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비나리의 창립 기념 창작 마당굿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은 플러싱 공연을 필두로 필라델피아, 보스톤, 로드 아일랜드에서 총 2천 5백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호응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 후  비나리는 1987년 미국 내 최대 규모 축제 중 하나인 퀸즈 축제의 한국관 장식과 진행을 맡기도 했으며, 타민족 커뮤니티가 주최하는 각종 문화 행사에 초청되어 한국 문화를 알리는 전도사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또한 한국의 문화 인사와 공연팀을 초청해 문화 강연이나 노래, 연극 공연을 개최해 각박한 이민생활을 하는 동포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함께 웃고 우는 훈훈한 광경이 연출되었습니다.

소수민족 중의 소수민족인 코리안아메리칸 커뮤니티가 미국사회가 제 권리를 누리기 위해선 소수민족 연대활동이 꼭 필요했습니다. 민권센터는 설립 초기부터 이런 사실을 인식하고 이민자 권익 워크샵 참여, 인종차별과 경찰폭력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가하는 등 코리안아메리칸 커뮤니티를 넘어 다인종 커뮤니티와 연대하는 활동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2) 1990년대: 권익옹호 활동의 확대와 커뮤니티 단체의 모범을 확립

1992년 LA 폭동은 엄청난 충격으로 코리안아메리칸 커뮤니티를 강타했습니다. 코리안아메리칸 커뮤니티는 이를 계기로 우리 모두가 미국의 사회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했습니다. 한편 중간선거에서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의 일부 반이민 정치인들은 미국 사회문제의 원인을 이민자 커뮤니티에 돌리는 반이민 정책과 법안들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미국내  반이민 추세의 신호탄은 캘리포니아 ‘주민발의안 187’ 이었습니다. 서류미비자에게 제공되던 모든 공공혜택을 박탈하도록 규정한 이 법안에 이어 각 주에도 유사 법안들이 도미노현상으로 상정되었으며, 급기야는 연방차원에서도 합법이민자의 사회복지 혜택도 제한하는 반이민 법안이 상정,통과되었습니다. 반이민 추세가 반이민 물결이 되어 전국의 이민자 커뮤니티를 옥죄는 순간이었습니다.

민권센터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이민자 권익옹호 활동에 나섰습니다. 우선 당시 이민자 커뮤니티를 탄압하기 위해 반이민 세력이 내세웠던 논리를 배격하고, 이민자 커뮤니티의 미국사회 공헌도를 알리는 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반이민 세력은 이민자를 사회보장비만 축내며 미국 경제를 망친 집단으로 몰아 세웠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전혀 정반대였습니다. 이민자 각 개인은 정부로부터 받는 혜택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하고 직업을 창출해 미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미국사회 발전의 중추였습니다. 민권센터는 이민자에 대한 편견에 대항해 교육활동과 간행물 발간 등을 통해 반이민 논리에 대항하는 진실을 알리는 활동을 벌였습니다.

민권센터는 이와 더불어 반이민 법안에 반대하고 올바른 이민정책을 연방 차원에서 관철시키는 구체적인 캠페인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수 많은 자원봉사자와 상근자들이 힘을 합쳐 반이민 법안 반대 서명운동, 이민자 권리 지키기 집회를 벌이며 반이민 추세의 심각성을 동포사회에 알리고, 타민족 커뮤니티와 함께 이민자의 생존권을 지키는 활동을 힘차게 시작했습니다. 민권센터는1990년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다음과 같은 이민자 권익옹호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워싱턴 포스트 광고 캠페인: 미 정치권 정책 입안자들이 매일 정독하는 워싱턴 포스트지에 사회보장 혜택마저 박탈하는 내용의 반이민 법안에 반대하고 이민자의 사회 공헌도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기획된 캠페인입니다. 민권센터의 자원봉사자와 상근자들은 약 두 달여에 걸쳐 매일 거리로 나가 ‘1인 1달러’ 모금운동으로 광고비를 모금했습니다. 뜨거웠던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었던 그 해 여름의 캠페인으로 결국 목표를 훌쩍 넘긴 광고비를 모금하고, 전국의 300개가 넘는 다인종 커뮤니티 단체의 참여를 이끌어내 워싱턴 포스트지에 2회에 걸쳐 반이민 법안 반대 전면광고를 게재했습니다.  

*종이 접시 보내기 캠페인: 연방 의회의 반이민 정치인들이 무차별 삭감하기 시작한 사회보장 혜택에는 저소득층과 노년층 이민자들의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푸드 스탬프도 포함되었습니다. 이에 민권센터는 음식을 담는 용기인 종이접시에 이민자의 서명을 받아 연방 의회와 정부의 주요 정치인에게 보내는 종이 접시 보내기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복원 96(Fix 96) 캠페인: 1996년에 미의회는 이민법을 부분 개악해, 합법 이민자들의 가족 초청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서류미비자 들의 추방 조항을 강화해 한 번 추방된 서류미비자는 3년 또는 10년에 걸쳐 재입국이 불가능하도록 했습니다. 민권센터는 민권법률단체 및 타민족 이민자 단체들과 미국의 이민 정책을 1996년 이전으로 돌리도록 요구하는 복원 96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1990년대 초에 시작된 이민자커뮤니티를 향한 탄압은 이민자의 삶을 힘들게 했지만 동시에 정치적 각성을 이루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아직 이민자 커뮤니티의 조직력이 전국 단위에서 발휘되지 못하던 시절에 코리안아메리칸 커뮤니티는 모범적인 활동으로 이민자 권익옹호 운동의 첨병에 우뚝 서는 자랑스러운 활동 성과를 남겼습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백악관 앞뜰에서 이민자의 사회보장 혜택의 일부를 복원하는 법안에 서명하는 서명식에 민권센터의 대표가 초청되어 참여한 장면은 우리의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민권센터는 1990년대에 들어와 이민자 권익옹호 활동을 비롯해 시민참여 활동 및 교육, 사회봉사, 문화 프로그램을 확대 운영하며 코리안아메리칸의 대표 단체의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이 시기에 민권센터는 커뮤니티 활동과 타민족 연대를 양대 축으로 하여 이민자 권익옹호와 시민참여 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단체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3) 2000년대: 커뮤니티와 함께 개척해 온 이민자 커뮤니티와 미국의 내일

2000년대의 미국은 새로운 세기를 향한 희망보다는 9.11사태의 암울한 그림자가 절망을 드리운 시기였습니다. 9.11 사태가 불러 온 애국주의 광풍은 ‘국가안보’라는 미명하에 미국의 모든 정책 방향이 결정되는 최대기준이 되었습니다. 이민자 커뮤니티  뿐만 아니라 미국의 일반 시민들도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하고 시민적 권리가 제약되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1990년대의 이민자 권익옹호의 성과는 이어지지 못하고 이민개혁을 비롯한 주요 이민정책은 아예 논의되지 못하거나 실현이 연기되었습니다. 아울러 미국사회는 다인종이 화합하는 미래전망이 불투명해지고 인종간의 갈등이 격화되고 대립하는 양상이 심화되었습니다.

민권센터는 이런 사회적 배경하에서 기존의 이민자 권익옹호 활동을 지속하는 한편 미국의 바람직한 내일을 제시하는 활동을 병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와 주, 연방을 두루 아우르는 이민자 권익옹호 활동으로 이민자 복지예산 증액, 이민자 학생 교육 체계 개선을 요구하고 이민자 커뮤니티와 미국사회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이민개혁을 촉구하는 활동에 집중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아프리칸아메리칸과 이민자 커뮤니티의 관계개선을 도모하는 캠페인(Building Bridges Campaign)과 미국사회에 이민자에 관한 진실을 제대로 알리는 활동을 시작하고 인종에 상관없이 모든 주민들에게 영향을 끼친 시정부와 주정부의 사회복지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캠페인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민권센터는 이렇듯 이민자 커뮤니티를 포함해 모든 커뮤니티에 중요한 정책 사안의 해결을 위해 땀 흘리며, 다인종이 화합하는 미국의 내일을 여는 전망을 세우고 모든 이와 함께하는 커뮤니티 단체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갔습니다. 이 시기에 민권센터는 다음과 같은 주요 활동을 벌였습니다.

*포괄적 이민개혁 캠페인: 현재 미국의 이민 시스템은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1200만 명에 달하는 서류미비자, 극심한 이민업무 적체, 부족한 이민 노동력 등의 문제를 양산해 이민자 커뮤니티 더 나아가 미국사회의 올바른 발전에 가장 심각한 방해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민권센터는 전국의 여러 단체와 손잡고 합리적인 이민법 개정을 위한 포괄적인 이민개혁 캠페인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뉴욕 타임스 광고 캠페인, 이민자 사진엽서 보내기, 아시안아메리칸 로비데이 활동을 주도하고, 미 전국 각지에서 수백만 명이 참가한 이민자 대행진에 코리안아메리칸 커뮤니티를 조직해 참여했습니다.  

*드림액트 캠페인: 서류미비 학생들이 합법 신분을 취득해 아메리칸 드림을 펼칠 수 있도록 하는 드림액트의 상정과 통과를 위해서도 민권센터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서명운동, 풀뿌리 로비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워싱턴 디시에서 개최된 전국집회에 참가해 타민족 학생들 및 단체들과 드림액트의 통과를 정치권에 촉구했습니다.

*평등한 운전면허 취득 캠페인: 9.11 사건의 여파로 리얼 아이디 법이 통과되어 각 주에서는 서류미비자의 운전면허 취득을 원천 금지하는 정책이 시행되었습니다. 뉴욕주에서도 약 30만 명의 주민이 운전면허증을 상실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민권센터는 60여 개 사회단체, 노조 등이 연합해 결성한 ‘뉴욕운전권리연맹’의 주관단체로 캠페인을 이끌었습니다. 그 결과로 전임 주지사에 의해 운전면허 발급 정책이 바뀌었으나 정치 공세로 인해 무효화 된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민자의 진실 캠페인: 미국사회에 만연된 이민자에 관한 편견을 바로잡고 이민자의 사회 기여도를 정확히 알리고자 기획된 캠페인입니다. 민권센터는 지역 차원에서 유색인지위향상협의회(NACPP)와 협력해 교육, 홍보활동을 통해 미국 대중이 이민자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갖도록 노력했습니다.

*아프리칸아메리칸-이민자 커뮤니티 연대활동: 사회적 편견 때문에 관계가 소원한 아프리칸아메리칸과 이민자 커뮤니티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공동 정책 현안을 가지고 함께 일하기 위해 뉴욕이민자연맹(NYIC)이 주도한 ‘Building Bridges Conference’에 민권센터는 주최단체의 하나로 참여했습니다. 

*사회복지 예산 삭감 반대 운동: 경제불황으로 세입이 감소하자 시정부와 주정부는 대규모 사회복지 예산 삭감을 단행했습니다. 민권센터는 시정부와 주정부가 합리적인 재정 정책으로 사회복지 예산 삭감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뉴욕주의 100개가 넘는 단체가 모여 결성한 ‘하나의 뉴욕연맹(One New York Coalition)’의 주관단체로서 알바니와 시청 앞 대규모 집회 풀뿌리 로비활동을 적극 펼쳤습니다. 그 결과 주정부의 세재 정책을 바꾸어 삭감 예정이던 사회복지 예산의 일부를 복원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인종 혐오범죄 반대 활동: 최근 몇 년간 뉴욕 지역에서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가 잇달아 발생했습니다. 민권센터는 타민족 커뮤니티와 함께 미국사회를 분열시키는 인종혐오 범죄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추방위기 한인 이민자 구명 운동: 추방위기에 처한 한 한인가정의 여성을 구명하기 위한 활동을 전방위로 실행했습니다. 이민단속국(ICE)에 그 여성의 석방을 촉구하는 엽서 보내기 서명운동을 벌이고 보석금 모금활동을 병행했습니다. 그 여성의 사연을 접한 한인 동포들이 십시일반 후원금을 민권센터에 보내고 많은 커뮤니티 주민들이 서명운동에 동참한 결과 추방대기소에 억류된 지 7개월 만에 그 여성은 일단 석방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추방재판을 지속하게 되었습니다.    

민권센터는 근래에 이르러 코리안아메리칸과 이민자 커뮤니티의 정치력을 신장하는 활동에도 많은 힘을 쏟았습니다. 유권자 등록, 유권자 교육, 유권자 분석, 유권자 권리보호, 선거참여 지원, 투표참여 독려 활동, 후보 토론회 등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정치력 신장 캠페인을 매년 실시하고 있습니다. 코리안아메리칸 커뮤니티 최초로 해마다 뉴욕시 한인 유권자 분석 자료를 완성해 과학적인 정치력 신장 캠페인의 토대를 구축했습니다.

*신규 이민 유권자 등록 7만 명 돌파: 신규 시민권자를 대상으로 한 이민 유권자 등록 캠페인을 지난 2004년부터 실시해 2015년까지 60,000명이 넘은 신규 이민 유권자 등록을 달성했습니다. 매주 시민권 선서식이 열리는 브룩클린 법원 앞에서 수 많은 자원봉사자와 실무자의 땀방울이 모여 이룩한 결실로 이민자 커뮤니티 정치력 신장의 초석이 될 기념비적인 성과입니다.  

민권센터는 2000년대 들어 사회봉사 활동의 범위를 대폭 확장했습니다. 저소득층, 신규 이민자, 노년층을 비롯한 커뮤니티 주민들의 법적 권리를 보호하고 생활에 도움이 되는 재정 서비스를 늘렸습니다. 이민자 권리 법률 클리닉을 운영해 소속 변화들이 이민법, 주택법, 노동법 분야에서 무료 상담부터 법률 대변까지 법률 서비스를 관장하고 있습니다. 재정 서비스는 저소득층 무료 세금보고 대행, 푸드 스탬프 신청 대행 등을 한인, 중국계 주민들과 타민족 주민들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민권센터 봉사 프로그램은 매년 이용 주민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커뮤니티 주민들의 생활 유지에 든든한 조력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최근들어 민권센터는 커뮤니티 조직화에도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각급 커뮤니티 모임에 참가하는 장년, 세입자, 이민자 청년과 드리머들은 커뮤니티 권익옹호와 정치력 신장 활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습니다. 민권센터는 단체 설립 초기부터 다양한 교육활동을 실시해 단체활동에 참가하는 청년들에게 올바른 사회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실제 활동의 장에 결합하도록 커뮤니티를 조직화하는 풀뿌리 커뮤니티 단체의 성장 모델을 구축해 왔습니다. 

민권센터 30년은 커뮤니티와 함께 땀흘려 온 역사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민권센터는 설립 초기의 창립자들의 헌신을 바탕으로 수 많은 활동가와 이사진, 실무진의 노력과 커뮤니티의 참여와 후원이 합쳐져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단체로 성장했습니다. 앞으로도 민권센터는 모든 이들과 함께 미국사회의 내일을 개척하는 단체로서 한걸음씩 전진해 나갈 것입니다.